LP 재생의 엔드 게임 FM Acoustics FM223 Phono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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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갤러리 창립 20주년 행사가 열린 지난해 10월4일 저녁, 서울 성북구 삼선동 오디오갤러리 본사 3층 시청실이 잠시 술렁였다.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오디오 제작자들마저 자신들이 지켜본 ‘매직’이 믿겨지지 않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FM어쿠스틱스(FM Acoustics)의 마누엘 후버(Manuel Huber) 회장이 자신이 만든 포노앰프를 건드려 LP에 깃든 클릭, 팝, 크래클 같은 각종 노이즈를 감쪽같이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FM어쿠스틱스의 포노앰프가 이 같은 노이즈 제거에 신통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이날 매직의 주인공이 바로 FM223 PhonoMaster(포노마스터)였다. 지난해 FM어쿠스틱스의 XS-1, XS-2B, XS-3B 풀 시스템을 리뷰했던 필자이기는 하지만, FM223에 LP를 걸어 직접 시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FM223’이라는 이 짧은 영어 알파벳과 숫자 조합에 이렇게나 강력한 아우라가 깃들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특히 최근 RIAA 이전 EQ 커브 보정과 카트리지 임피던스 세팅으로 음이 확확 바뀌는 재미에 빠진 터라 더욱 그랬다. 또한 오디오로 듣는 음이라는 것은 결국 전체 시스템과 공간이 함께 빚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이 FM223은 다시 깨닫게 해줬다.
FM Acoustics와 그들만의 리그
FM어쿠스틱스는 ‘그들만의 리그’로 유명하다. 타사 브랜드 제품이 자신들의 시스템에 끼어들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음에 방해가 된다고 본 것이다. 이번 FM223 시청도 마찬가지. 오디오 갤러리 본사 시청실에서 진행된 시청에는 플래그십 스피커 XS-1과 파워앰프 FM1811 2대, 프리앰프 FM268C가 동원됐다. 스피커 XS-1의 경우 아예 타사 파워앰프와 연결 자체가 불가능하다. 스테레오 파워앰프 FM1811 역시 외장 크로스오버를 별도로 마련하고, 스테레오 앰프 2대로 실질적인 바이앰핑을 하는 등 철저히 XS-1과 매칭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나마 유저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은 턴테이블이나 CDP 같은 소스기기 정도다.
FM어쿠스틱스가 이처럼 자신들의 풀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은 ‘좌우 밸런스와 룸 어쿠스틱스’ 때문이다. 우선 FM어쿠스틱스의 스피커와 앰프는 모두 철저한 좌우 밸런스를 추구한다. 좌우가 완벽히 밸런스가 맞아야 포커싱, 이미징, 사운드스테이징 모든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원음의 완벽한 재생을 위해서다. 연주회장이나 녹음 스튜디오에서 나는 아주 작은 소리, 예를 들어 연주자의 옷깃이 스치는 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재생하는 것이 FM어쿠스틱스의 목표다.
이 같은 좌우 밸런스를 위해 부품 선별과 모듈 제작에 공이 많이 들어가며 그 과정에서 불량품도 엄청 나온다. 정해진 스펙대로 만든 것들이 아니면 모두 폐기 처분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제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스펙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비셰이(Vishay) 저항은 일반 저항보다 100배 정도 바싼데, FM어쿠스틱스에서는 이 비셰이 저항을 대량 구매해 또다시 선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피커 인클로저도 마찬가지. 통마다 소리 차이가 나기 마련이라 그 소리의 좌우 밸런스가 안맞는 인클로저는 무조건 폐기 처분한다.
FM어쿠스틱스에서는 실제 유저가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할 때도 시청공간에 따라 좌우 밸런스를 최우선시해 세팅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집마다 시청환경이 전부 다르고 좌우공간이 비대칭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또한 FM어쿠스틱스가 프리앰프부터 파워앰프, 외장 크로스오버, 스피커까지 모든 기기를 자사 풀 시스템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좌우 밸런스가 완벽히 맞는 기기는 자사 제품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단지 기기간 임피던스 매칭이나 위상 일치만을 위해 ‘원 브랜드’를 추천하는 여느 제작사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풀 시스템’인 것이다.
FM223은 그래서 어떤 포노앰프?
FM223 PhonoMaster(포노마스터)는 FM어쿠스틱스가 내놓은 4개 포노앰프 중 최상위 모델로, 밑으로 FM222 MKIII, FM123, FM122 MKII가 포진해 있다. 실제로 턴테이블(프로젝트 오디오 175 Vienna Philharmonic)에 물려 여러 LP를 들어보니, 포노앰프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을 건드리고 음미할 수 있었다. 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적막하며 해상력이 살아 있는 소리였다. FM어쿠스틱스 풀 시스템 특유의 깊숙한 공간감과 폭신폭신한 음의 감촉을 가장 윗물인 이 포노앰프가 이끈다는 인상이었다. 카트리지 신호를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역시 포노앰프다.
FM223은 기본적으로 디스크리트 클래스A 증폭회로를 탑재한 풀 밸런스 노피드백 포노앰프. 따라서 입출력단자는 모두 XLR 단자뿐이며, 입력단자는 2조가 있어 턴테이블이나 톤암을 2개까지 상시 연결해둘 수 있다. 파워코드가 붙박이인 프리앰프나 파워앰프와 달리, 별도 전원부(FM205)를 마련한 점도 눈길을 끄는데, 이는 워낙 미세한 신호를 다루는 포노앰프가 전원트랜스의 전자기장 노이즈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FM223은 또한 표준 RIAA 커브 뿐만 아니라 그 이전 각 레코드회사들이 정해놓은 다양한 EQ 커브에도 대응한다. 1950년대 모노로 녹음된 음반도 마음껏 그리고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카트리지에 맞춰 부하 임피던스나 커패시턴스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LP에 난 스크래치나 정전기, 먼지 등에 의한 클릭(click), 팝(pop), 크래클(crackle) 노이즈를 대폭 지워주는 기능도 있다.
외관부터 본다. 섀시는 물론이고 노브와 버튼까지 모두 황금빛을 둘렀다. FM어쿠스틱스의 전형적인 패밀리 룩이다. 섀시는 항공등급의 알루미늄을 일일이 레이저로 절삭해 손으로 광택을 냈으며, 음각으로 새긴 글자와 눈금은 시인성과 내구성을 위해 모두 아노다이징 처리했다. FM어쿠스틱스에 따르면 FM223은 매일 10시간씩 365일 틀었을 때 무려 38년 동안 쓸 수 있다. 역시 ‘메이드 인 스위스’답다. 폭은 446mm, 높이는 92mm, 안길이는 280mm, 무게는 9.4kg.
내부를 보면 핵심 회로는 모두 모듈 구성으로 정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입력단의 경우 HR19340 모듈 2개를 통해 커먼모드 시그널(Common Mode Signal), 즉 외부 유입 노이즈를 대폭 줄이는 한편 자신에게 들어오는 언밸런스 신호나 ‘가짜’ 밸런스 신호를 그 자리에서 ‘진짜’ 밸런스 신호로 바꿔준다고 한다. 출력단 역시 HR 19200 모듈이 2개 장착돼 ‘진짜’ 밸런스 출력을 뽑아낸다.
FM어쿠스틱스가 특히 포노앰프 설계에 있어서 이처럼 ‘밸런스’ 회로를 강조하는 것은 카트리지 자체가 밸런스 소스, 즉 +, - 어느 신호도 그라운드(ground)와 연결되지 않은 신호이기 때문. 이같은 밸런스 신호를 받아들여 밸런스 증폭을 제대로 구현할 경우 험이나 커먼모드 노이즈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결정적 이유다. 다이내믹스와 헤드룸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스펙은 화려함 그 자체다. 게인은 통상 수준의 52dB이지만 10dB를 보탤 수 있고, 밸런스 입력단의 커먼모드노이즈 제거율(CMRR)은 무려 110dB에 이른다. 데시벨 표기라 실감이 안나시겠지만, 이를 십진법으로 풀면, 입력단을 통과한 신호에 섞인 노이즈가 신호 대비 31만6227분의 1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100dB(10만분의 1)와는 이 세계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이처럼 높은 CMRR은 필자가 FM223을 ‘차분하고 정갈하며 아늑한’ 소리라고 느끼게 한 중요한 기술적 팩트다. 필자가 자택에서 쓰고 있는 포노앰프가 상대적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느껴진 것도 이 CMRR 수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밖에 주파수응답특성은 1Hz~400kHz에 걸쳐 평탄하고, 입력감도는 250uV에 이를 만큼 예민하다. 왜율은 최대치가 0.005%에 머물고, RIAA 커브 보정의 정확도는 전 대역에 걸쳐 +,-0.05dB에 그친다.
FM223으로 할 수 있는 것들
FM223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는 FM233 전면 패널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마누엘 후버 회장이 시연한 ‘De-Click’(디-클릭)과 ‘De-Crackle’(디-크래클) 버튼, 그리고 2개의 EQ 커브 보정 노브와, 입력(부하) 임피던스와 커패시턴스를 조절할 수 있는 카트리지 로딩 모듈이다.
디-클릭, 디-크래클 버튼은 말 그대로 스크래치나 정전기, 먼지 등으로 인한 클릭과 크래클 노이즈를 최대한 지워주는 역할을 한다. LP를 들을 때 일정 간격을 두고 덜컥덜컥 나는 노이즈가 클릭, 계속해서 팝콘 튀기는 것처럼 타닥타닥 나는 노이즈가 크래클이다. 이를 DSP 방식이 아니라 오로지 디스크리트 아날로그 회로로 구현한 점, 그것도 원 음악신호 주파수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노이즈만 없앤 점이 놀랍다.
2개의 EQ 커브 보정(De-emphasis) 노브는 왼쪽이 턴오버(Turnover), 오른쪽이 롤오프(Rolloff)다. 표준 RIAA 커브를 따른 LP는 그냥 두 노브를 ‘RIAA’(500Hz, -13.7dB)에 놓고 들으면 되고, 그렇지 않은 레코드는 각각의 턴오버 주파수(250Hz~1kHz)와 롤오프 감쇄량(-16dB~-5dB)에 맞춰 들으면 된다.
#. 잘 아시는 대로, 아날로그 음반은 제한된 디스크에서 더 오랜 재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음원정보가 기록되는 음구(groove)의 폭과 깊이를 조절해야 했다. 음구가 넓고 깊은 저역은 레벨을 낮춰 음구를 덜 파내고, 음구가 좁고 얕은 고역은 반대로 레벨을 높여 커팅한 것이다. 즉, 특정 주파수(턴오버 주파수) 이하의 저역은 원래보다 6dB 낮춰 커팅하고, 고역(10kHz)은 원래보다 높여 커팅했다. 이것이 바로 이퀼라이징 커브, ‘EQ 커브’다. 따라서 레코드 재생시에는 EQ 커브와 정반대로 보정해주면 전 대역에서 원래 음악신호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즉, 저역은 턴오버 주파수의 음압을 다시 6dB 높이고, 10kHz 고역 주파수는 음압을 다시 낮춰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각 음반사마다 이 EQ 커브가 달라 음반 재생이 음질이 균질하지 않다는 것. 회사마다 저역의 턴오버 주파수와 고역의 롤오프 감쇄량이 달랐다. 콜롬비아(Columbia)는 턴오버 주파수가 750Hz, 10kHz 감쇄량이 -16.0dB, 런던(London)은 700Hz, -10.0dB, 빅터(Victor)는 800Hz, -10.0dB, 데카(Decca)는 500Hz, -11dB, 블루노트(Blue Note)는 400Hz, -12.0dB였다. 그래서 1958년 미국레코드산업협회(RIAA)가 확정한 표준화 EQ 커브가 바로 ‘RIAA 커브’로, 턴오버 주파수는 500Hz, 롤오프 감쇄량은 -13.7dB를 표준으로 삼았다.
이밖에 딥(DIP) 스위치 방식의 카트리지 로딩 모듈도 강력하다. 스탠더드 모듈의 경우 MC카트리지는 180옴, 90옴, 45옴, 35옴, MM 카트리지는 100k옴, 47k옴, 33k옴, 24k옴에서 선택할 수 있다. 통상 포노앰프의 부하(입력) 임피던스는 카트리지의 내부 임피던스보다 높아야 하는데, 이는 카트리지가 읽어들인 음악신호를 손실없이 건네 받기 위해서다. 카트리지 입장에서는 뒷단의 임피던스가 높을수록 자신의 임피던스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큰 저항없이 음악신호를 내보낼 수 있다.
한편 FM223 전면 패널 맨 왼쪽에는 입력버튼(Input A, B)이 있는데, 이를 통해 후면 XLR 입력단 2조에 연결된 턴테이블이나 톤암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옆에는 버티컬(Vertical) 버튼이 있다. 이는 LP 커팅을 할 때 말 그대로 수직으로 그루브를 파낸 LP 재생시 사용하면 된다. 대부분의 LP는 수평(Lateral) 방식을 쓴다. ‘+10dB Gain’ 버튼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본 게인 52dB에 추가로 10dB를 얹는 기능이다. 0.2mV 이하 저출력 MC 카트리지에 유용할 것이다.
‘노치’(Notch) 버튼은 제작 당시에 험 노이즈가 끼어든 LP 재생시 유용한데, 이를 누른 상태에서 100Hz와 120Hz를 선택하면 해당 주파수만 감쪽같이 없애준다. 100Hz와 120Hz는 물론 험 노이즈 주파수이며, 이는 AC 전원 주파수(50Hz, 60Hz)의 2배 고조파다. ‘LF’(Low Frequency) 필터 버튼은 말 그대로 20Hz 이하 초저역의 음압을 -3dB 감쇄시켜준다.
EQ 커브 보정 테스트
FM223의 2개 EQ 커브 보정 노브를 조절해 AB테스트를 해봤다. 표준 RIAA 커브를 기준으로 했을 때(A)와 특정 음반사의 EQ 커브에 맞춰 수동 보정을 했을 때(B)를 비교한 것이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이 음반은 1954년 11월18~21일 모노로 녹음된 LP로 콜럼비아에서 발매됐다. 따라서 왼쪽의 턴오버 주파수를 500Hz, 오른쪽의 롤오프 감쇄량을 -16dB에 맞춰 들어보니, RIAA 커브 보정으로 들었을 때보다 생동감이 넘치고 특히 고역이 보다 매끄러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악기의 정위감도 더 살아났으며, 다이내믹스도 보다 늘어났다. 다시 RIAA 커브 보정으로 들어보면, 음들이 좀체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인상. 전체적으로 음들이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해진 듯했다. 다시 콜럼비아 커브로 바꿔 들어보면, 음의 입자가 진해지고 해상력과 생기, 색채감이 대폭 살아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늘어난 점도 큰 변화다. 한마디로 음들이 팍팍 내려갔다가 쭉쭉 올라갔다.
셋업 및 시청
시청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FM어쿠스틱스의 프리앰프(FM268C), 파워앰프(FM1811), 스피커(XS-1), 그리고 프로젝트 오디오의 턴테이블 175 Vienna Philharmonic을 동원했다. 턴테이블의 경우 지난해 리뷰를 한 적이 있는데, MC 카트리지는 오토폰 최상위 라인인 Cadenza 시리즈를 근간으로 특주했다. 출력전압은 0.5mV, 권장 부하 임피던스는 50~200옴이다. F223은 표준 RIAA 커브로 들었다.
Anne-Sophie Mutter, James Levin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Zigeunerweisen’(Carmen Fantasie)
무게중심이 무척 낮고 단정한 음, 뒷배경이 몹시 조용한 음이 흘러나온다. 시청실의 공기마저 쭉 빨아들인 것 같은 놀라운 SNR이다. LP 음이 이렇게 깨끗해도 되나 싶을 정도. 그러면서도 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것을 보면, 그리고 바이올린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면 역시 몇 수 위의 실력이다. 청음노트에 쉴새 없이 메모했다. 곱다, 소프트, 적막, 순백, 순결, 깨끗, 선명, 투명, 평온. 없는 것, 느끼지 못한 것도 무더기로 적었다. 잡티, 잡내, 공진, 떨림, 편차, 굼뜸, 나댐. 마치 편안한 심리치료실에 들어앉은 것 같다. FM어쿠스틱스 풀 시스템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포노앰프도 그렇고, 프리, 파워, 스피커 모두 자신을 결코 내세우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대단하다.
Miles Davis ‘Round Midnight’(‘Round About Midnight)
트럼펫의 음색과 정위감이 장난이 아니다. 음에 지저분한 기름기가 없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그냥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를 시청실에 소환해 연주를 감상한다는 느낌. 그만큼 리얼하고 생생하다. 트렴펫과 피아노의 위아래 위치 구분, 드럼의 세세한 아티큘레이션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귀를 쫑긋 세워 음의 출발지를 추적해봐도 도저히 스피커 유닛들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그냥 생음악이다. 이어 ‘Ah-Leu-Cha’를 들어보면 재즈 특유의 리듬앤페이스와 밀도감이 단번에 흡족한 수준으로 펼쳐진다. 비유하자면, 프리앰프 FM268C가 재생무대에 공간감을 선사하는 스페이스 스톤이라며, FM223은 오디오 시스템 전체에 영혼과 생명을 불어넣는 소울 스톤이다.
Diana Krall ‘Desperado’(Wall Flower)
계속해서 곡을 들어봐도 FM223의 가장 큰 매력은 적막한 배경과 섬세한 해상력, 나긋하고 정확한 표현력이다. 배경에 뭔가 개운하지 못한 미세 노이즈가 단 한 방울도 없는 것 같다. 또 다른 매력은 LP에서는 좀체 듣기 힘든 고역이 술술 터져나온다는 것인데, 다이애나 크롤의 '데스페라도'가 꼭 그 경우였다. 포노앰프의 다이내믹 레인지와 해상력이 받쳐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편안하게 음악에 빠져들 수 있게 해준 점도 대단하다. 다음 트랙 ‘Superstar’가 시작됐을 때는 시청실에 그녀가 들어온 것 같아 메모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을 정도. 그야말로 스피커와 앰프가 모두 사라지고 그녀와 무대만 남은 상황이다. 이 무대에서는 혼탁도 없고 애매함도 없다. 통상 '음에서 중량감이 느껴진다', '풋워크가 경쾌하다', 이런 표현을 칭찬으로 쓰는데 FM223은 그런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치우치거나 강조하려 드는 기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총평
FM어쿠스틱스의 FM223 포노앰프를 시청하며 계속해서 '엔드 게임'(end game)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말한 유명한 대사가 있다. "1400만605개 경우의 수를 따져보니 타노스를 이기는 것은 딱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엔드 게임(최종단계)에 진입했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으로 확인한 결과, 그 한가지의 경우는 바로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살아 남아 핑거스냅을 하는 것이었다.
by 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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